고2 겨울방학때쯤이었던것 같다.
그때 나는 독서실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었고, 공부여부와 상관없이 새벽 1시쯤에 집에 돌아오는게 일과였다.
당시 독서실에서 집까지 걸어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정도였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약 8분정도 걸어야 하는 길고 곧은 길이 포함되어 있었다.
폭이 넓고, 길고, 곧은 그 길을 나는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넓고 길고 곧은 길 한가운데에 나 혼자 있으면 정말로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에 막 크게 소리지르거나 노래를 부른적도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날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새벽 1시 20분쯤... 어둡고 조용하고 사람이 없어서 포근한 시간대였다.
그런 시간에 나는 그냥 그런대로 평소처럼 혼자 있다는 그 기분으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
탁탁탁탁탁.....
상념에 잠겨 걷고 있는데 뒤쪽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을때.
개 한마리가 내 뒤를 따라오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니 뒤로 파다닥 달려가는것이 보였다.
그러려니 싶었다. 야밤에 개를 데리고 산책오는 사람도 종종 있는법이고, 그중 개목걸이를 하지 않고 산책시키는 주인도 자주 있는거다.
주인이 없는 개다 싶어서 잠깐 쓰다듬어주면 멀리서 개의 주인이 산책을 하고 있고 그런 경우일꺼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탁탁탁탁탁..............
그렇게 걷고 있으려니까 자꾸 또 소리가 들리는거다.
뒤를 돌아보니,
다시 개가 나를 쫓아오다가 눈이 마주쳐서 뒤로 파다닥 하고 달려가는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계속 걸었다.
탁탁탁탁탁탁탁탁....
걷던 걸음을 멈췄다.
탁탁거리던 소리도 함께 멈췄다.
......
다시 걷기 시작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
다시 걸음을 멈췄다.
다시 조용해졌다.
........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 뒤에서 나를 지그시 보고 있던 개가 화들짝 놀라 다시 멀리 쪼르르 도망쳐간다.
아무렴 어떨까.
적당히 따라오다가 말겠지..
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뒤에서 들리는 개 발소리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라는 기분이 좋아서 이 길을 좋아했지만,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그저 말없이 따라올뿐이라는 상황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
그렇게 집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내 뒤에 딱 붙어있던 개는, 지금 나랑 약 10m정도 거리를 둔채로 나를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8분이나 걸었다.
8분이나 내 뒤를 따라왔다.
개 주인은 어디 있었을까.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시야에는 사람 그림자 코빼기 하나 보인적이 없었다.
지금 시간 1시 30분.
이 개는 왜 지금 저곳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대충봐서 더러운 개는 아니었다.
주인이 없을리가 없었다. 분명히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과연 주인이 이 개를 찾아낼수 있을까?
내가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개는 바깥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밤이라고 해서 조용한것은 아니다.
도둑고양이들이 알게 모르게 돌아다니는 밤이고, 도로에라도 나가면 차에 치여 떡이 되겠지.
그냥 바깥에서 하루를 넘긴다고 해도 몸상태가 성히 넘어가지는 않을것이었다.
.................................
개에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간다.
개는 그런 나를 보더니 뒤로 한걸음. 한걸음. 물러서다가 쪼르르 달려서 나무뒷편으로 숨어버린다.
그렇게 5분정도 개와 술래잡기를 했다.
개는 끝까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내가 접근하면 그것이 무서웠는지 멀리 내달리는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멀리까지 갔다 싶으면 그 멀리서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있는것이었다.
...
잠깐동안 생각을 해봤다.
이전의 개 주인이라면 이 개에게 목줄을 안매고 어떻게 자기 주변에서 놀게 할수 있었을까.
.....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리를 쪼그려 앉은다음 팔을 벌렸다.
개가 달려온다면 그대로 끌어안을수 있게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개를 향해 나도 함께 지그시 눈을 맞췄다.
............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개는 여전히 나와 거리를 둔채 내 주변을 빙빙빙 맴돌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개를 향해 시선을 맞추며 개가 빙빙 도는대로 방향을 돌리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15분이 지나고.
20분을 넘기고.
30분을 넘어섰다.
시간은 2시가 훌쩍 넘은지 오래였다.
개는 오랫동안 그렇게 내 주변을 빙빙 돌다가.
마침내 내 손이 닿을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벌리고 있던 손중 한손을 앞으로 내밀어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멀리 가버리는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한테로 더 오고 있었다.
그렇게 개가 내 품에 들어왔을때,
어렸을적에 친구네 집 개를 만졌던 경험으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지탱하고 허리를 잡고 끌어안아서 들어올렸다.
그 상태 그대로 집에 개를 안고 갔더니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다.
시계를 보았다. 시계바늘은 2시 30분을 넘어서 3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세수를 하고 바로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잤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바로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지.
우선은 밖에서 하루종일 굶었을테니 좀 먹여야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를 집 안으로 그냥 들여놓을수는 없었다. 뭐가 어찌되었든 개는 밖에서 한참을 쏘다니다가 집에 온 상태니까 온 몸이 먼지투성이인것이다. 특히 집 바닥에 개 발자국이라도 남긴다면 내일 엄마한테 뭐라고 할것인가.
집 밖에 놔둔채 문을 닫아버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현관이었다. 혹시라도 현관에 있는 신발을 물어뜯을지 모르니 신발들은 모조리 신발장안에 넣어두고, 현관 바닥에 개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현관에 개를 내려놨더니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그냥 놔둬도 괜찮을듯 싶었다. '이제 냉장고에서 개가 먹을만한것을 꺼내오면 되겠지.' 하고 주방으로 들어갈려는데 개가 그대로 현관에서 뛰쳐나와서는 내 뒷쪽 종아리에 자기 얼굴을 딱 붙이고 부비적거리는것이다. 바닥에는 이미 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뒤였다. 젠장...
개 발자국은 나중에 걸레로 닦기로 하고, 다시 개를 들어올려서 현관에 내려놓았다. 현관에 놓인 개는 다른 움직임없이 내 눈만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그렇게 현관에 내려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개를 잠시동안 보다가, 개의 엉덩이 윗부분을 아래로 강하게 눌렸다. 개는 주춤거리다가 손의 힘에 못이겨 뒷다리를 굽혀 앉는 자세가 되었다. 그렇게 손을 뗏더니 다시 뒷다리를 세워서 일어나는것이다.
다시 손으로 눌렸다. 다시 앉았다. 다시 손을 뗏다. 다시 일어섰다.
손으로 눌렸다. 앉았다. 손을 뗏다. 일어섰다.
눌렸다. 앉는다. 뗀다. 선다.
눌렸다. 앉는다. 뗀다. 선다.
눌렸다. 앉는다. 뗀다...
이번에는 일어서지 않는다. 이 상태로 또 계속해서 개를 지켜보았다. 몇십초가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선다. 엉덩이 윗부분을 손으로 또 지그시 눌렸다. 다시 앉혀진다.
그 상태로 개와 눈을 맞춘다.. 몇초가 지나고 몇십초가 지나고 몇분이 지나도록 개는 앉은채로 내 눈만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그래. 이정도쯤 했으면 이 개도 자기가 있어야 할곳이 현관이라는걸 인식했으리라.
확실히 그런 모양인지, 내가 주방으로 들어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만한걸 찾을때까지 개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멍!"
그 자리에 앉은채로 짖어버렸다는것이다. 이런 썩을...
"동욱아.. 무슨 개고?"
그리고 그 소리에 엄마가 깨셨다.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욱아.. 니도 잘 알잖아. 우리집이 개를 키울수 있을만한 형편이 아니라는거.. 불쌍해도 어쩔수 없다.."
나도 엄마가 옛날부터 개를 싫어하셨다는것은 알고있던 터였다. 거기다가 내가 학교를 가고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시면 집 안에는 아무도 개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것이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집에 돈이 그리 넉넉한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바깥으로 내치기에는 너무 매정했다. 엄마한테 부탁했다. 딱 하루만, 오늘 딱 하루만 우리집에서 재우고, 내일 새 주인을 찾아주자고. 우리집에서 키울수는 없지만 그 정도는 할수 있지 않느냐고 하며 부탁했다.
"알았다. 그러면 니가 알아서 잘 처리해봐라. 개 먹이는 냉장고안에 마른멸치 그거 잘 먹을테니까 그거 먹이고.. 엄마는 조금 더 자야겠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엄마는 다시 들어가셨다. 크게 야단맞을꺼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관대하게 봐주셔서 고마웠다.
접시에 마른멸치를 적당량 넣어서 현관에 있는 개에게 갖다줬다. 하지만 개는 입을 대는둥 마는둥 대충 혀만 갖다대더니 내 눈만 바라보고 있는것이었다. 반찬트집을 하는가 싶어서 다른 음식을 가져다 줄려고 다시 주방으로 가는데, 뒤에서 타닥 하는 소리가 나더
니 개는 또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다시 현관에 내려놓고 다른 음식을 몇개 더 갖다줬다. 하지만 개는 아무것도 제대로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코를 대서 몇번 킁킁거리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혹시 변이 마려운걸까 싶어서 화장실에 데려다놓고 계속해서 지켜봤지만 그런건 아닌것 같았다. 그런 주제에 내가 현관 근처에 있지 않으면 자꾸 현관에서 뛰쳐나와서 나에게로 달려오는것이었다.
....
아무리 내가 인내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더 이상은 힘들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데, 나도 잠을 자야 내일 생활을 할수 있는거다. 이렇게 개에게 묶여서 비위맞춰주는것도 한계가 있다.
아 모르겠다. 니가 밥을 굶건 말건, 변을 보건 말건, 더 이상은 신경 못 써주겠다..
내 발 근처를 돌아다니며 내 눈만 바라보고 있는 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다시 현관으로 내려놓았다. 혹시라도 자다가 오줌이라도 싼다고 치면 아무래도 청소하기 쉬운 현관이 안전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자 이렇게 너는 현관에서 잠을 자고, 나는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깔고 누워 잔 다음에, 내일 새 주인을 찾아주면 되는거다. 그러면 되는거다. 그러면 되는거다. 그렇게 집에 있는 전기 불을 모두 껐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랬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움직임이 잔잔해진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개도 피곤한 모양인지 눈이 감기는 모양이 보였다. 손으로 개의 머리에서 등끝까지 쓰다듬어주면서 지그시 아래로 눌렸다. 개는 별다른 저항없이 자세를 낮춰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 그러면 되는거다.
그렇게 약 10분을 바라보았다. 개는 완전히 잠든것 같아 보였다.
그래. 이제 된거다. 이렇게 나는 개를 현관에서 재우고,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깔고, 방문을 닫고, 누워서 잠이 들면 내일 하루가 오는거다...
탁, 탁, 탁...
타각, 타각, 타각..
닫힌 방문 밖으로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마음에 문을 열었더니, 현관에 앉아 자던 개는 어디가고 거실 이곳저곳에 찍혀있는 개발자국과 거실 가운데 서 있는 개가 있었다.
.....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거지만 사람이 모든걸 참고 돌봐주는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거다. 나는 지금 피곤해 죽을거 같아서 당장 누워 자고 싶은 상황이고, 개 때문에 그 시간을 침해받는것도 한계가 있다.
........
개를 현관에 갖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전 처럼 눕혀서 가만히 지켜보며 잠들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개는 현관에 누워서 잠들었다. 물론 이 개가 잠들었다고 하여 안심하고 자러 들어갈수 없다는것은 방금전에 증명된 사실이다.
일단은 어떻게든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집안 곳곳에서 의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로 현관 앞에다가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감고 있던 개는 바리케이트가 다 쌓여갈때쯤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나서 의자로 만들어진 바리케이트를 발톱으로 벅벅 긁는것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다 쌓인 바리케이트가 무너지는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개를 현관에 놔두고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누웠다.
벅벅벅벅, 북북북북, 긐긐긐긐...
바리케이트를 긁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타타탁, 틱, 틱, 꿍.
뛰어넘을려고 시도하는건지, 특유의 발소리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멍! 멍! 멍! 왕왕!
짖는 소리까지 들린다. 씨끄럽다.
하지만 쟤도 저러다가 결국은 지쳐 잠들겠지.
벅벅벅, 타탁! 꿍! 멍멍멍! 북북북북북북... 멍! 왕왕왕!! 멍! 멍!
그런 소리가 한참동안 들렸다. 잠들기가 거슬릴 정도로 씨끄러웠지만 '저러다가 지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멍! 멍! 벅벅벅벅벅.. 북북북북북... 긐긐긐긐긐긐긐긐.....
어느순간부터인가 짖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방벽을 긁는 소리가 한참동안 들렸다. 긁는 소리가 너무나 다급해서 "무엇에 쫓기는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깐이면 지칠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더 소리는 급박해졌다. 마치 지금 바리케이트를 넘어서지 못하면 죽어버릴것처럼 급박하게 바리케이트를 긁고 있었다.
끼이잉... 깨애앵..... 끼이이이잉...
그러더니 개가 소리를 낸다. 짖는 소리는 아니었다. 우는 소리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절망감에 가득 차서 그저 울고 있을뿐이라는 느낌이 확 전해져 오는 그런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문을 열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개는 울음을 그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루엣의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것 같았다. 그래. 내가 졌다.. 어쩌겠냐. 정 그렇다면 죽이되던 밥이 되던 니 마음대로 해봐라... 바리케이트로 쌓여있던 의자들을 모두 치우고 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 방으로 데리고 갔다. 개가 먼지투성이에 더러워도 어쩔수 없었다. 개가 자다가 오줌을 싼다고 쳐도 어쩔수 없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개를 가둬둘만큼 매정할수는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 누워서 팔을 뻗으니 개는 조용히 내 팔쪽으로 와서는 거기에 엎드려서 잠을 청한다.
개는 조용했다.
어쩌면 개가 원했던것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에 걸어가던 나를 따라올때부터 단지 내 옆에 있고싶었을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개는 조용히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날 자고 일어난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하루종일 머릿속에 "이 개를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대충 개를 키울만한 친구를 몇명 생각해서 전화를 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엄마도 개를 맡아 키울만한 사람을 찾아본다고 하셨지만, 엄마가 아는 사람에게 개를 맡기면 다시는 개를 보지 못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제가 어떻게든 맡아 키울사람을 찾아볼께요." 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날 하루종일 전화를 걸었던 사람들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하기야 개를 키우고 싶었다면 진작에 키우고 있었겠지. 동물병원 유기견 보관소를 찾는것도 생각해봤지만, 거기에서는 오랫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를 시키는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꼬박 하루가 넘어갔다.
일요일은 친구랑 외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씻고 외출준비를 하는동안 개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어제도 그랬다. 이 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불안해하는것 같았다.
밖에 나갈려고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개는 집 밖까지 나를 따라오려고 했다. 개를 데리고 나갈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봤지만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
일단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개도 나를 쫓아 집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그렇게 집 안에서 가만히 개의 눈을 바라보았다. 개도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개의 허리를 받쳐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개의 눈을 보았다. 역시 개도 나의 눈을 보았다. 그 상태로 가만히 개를 보다가 말했다.
"내가.. 지금 밖에 나가도 좀 있다가 다시 들어올꺼거든.. 그러니까 집 안에서 조금만 기다려주라. 꼭 돌아와줄테니까 조금만 앉아서 혼자 기다리주라."
알아들을리가 없는 말이었다.
개는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집 밖으로 나갈때까지 개는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뿐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런 개의 모습이 알아들었을리가 없는 말이었지만 내 말을 모두 알아들은것만 같았다..
오늘 외출 약속을 한 친구는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친하게 지낸지는 오래되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르게 가고, 내가 집을 이사하고나서 2~3달에 한번꼴로 만나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 친구에게는 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짐을 지우기가 미안했던것이다. 하지만 어제 알만한 친구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서 모두 거절당한 상황이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야, 혹시 개 키울 생각있나?" 하고 물었다.
뜻밖에 그 친구는 "그 개 정 키울사람 못 구하면 나한테 데리고 와라. 우리 친척중에 개 키우고 싶어하던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 맡기면 되겠다." 라고 해주는것이었다. 그 친구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집에 왔더니 개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한테 개가 어디있는지 아시느냐고 물어보니 작은이모가 개를 키워주기로 했다고 하시는거다. 여러모로 잘 된 일이었지만, 낮에 외출하기전에 개한테 했던말이 생각나서 조금 찝찝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개가 나를 끝까지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았다.
-----------------------------------------------------------------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밖에 나갔다 와서 대충 몸을 씻고 나와서 엄마를 보니 엄마는 전화통화중이셨다.
"허허이.. 그게 그라더만 없어졌단 말이가? 참 웃기는 일이라. 그러면 그렇게 없어지고나서 아직까지 안 돌아왔고? 어여 참 어쩌겠노. 지가 그렇게 나간거 우리가 어쩔수 있나."
전화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인지도 몰랐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전화통화를 끝내시고나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모댁에 보낸 그 개 잘 살고 있대요?"
"그저께 도망쳤댄다."
"예? 도망요?"
"그러게 그게 밤에 자는 사이에 그냥 쓱 나가서 안 돌아온다네."
"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요? 보니까 분명히 사람한테 길들여진 개 같던데.."
"그러게. 처음에 방에 들여놨을때 아무데서도 변을 안보길래, 어디 병이 낫나 싶었거든. 그런데 마당에 딱 내려놓으니까 그제서야 변을 쭉 보더란다. 분명히 전에 사람한테 길들여진 개인데 어째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가보다. 이모가 뭘 해줘도 시큰둥하게 가만히 있었다더라. 그러더만 그저께 도망을 갔더랜다."
그렇게 개와 나의 인연은 끝났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골목길 어딘가에서 추위에 떨며 사람을 따라다니고 있을 개 한마리를.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